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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일기

어제 일용할 양식을 준비하고자 파와 양파를 다듬었더니 아직도 손에 냄새가 가득하다. 별일 아니거라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 점점 별일이 되어 가고 급기야 파 한단이 정말 많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으며, 담아놓을 용기를 뒤져가며, 그래도 이왕 한거 양파도 다 다듬어 보관하자라는 생각으로 조각 조각 썰어 냉동실에 넣어두니 시간은 두 시간이 훌쩍 넘고. 냉동실에 보관되어 있는 파들을 보니 뿌듯하기도 하지만, 손에 밴 냄새는 쉽게 떠나지 않는다.
어떤 기억을 보이지 않는 곳에 얼려 놓았다고 생각했지만, 여기저기 배어 있는 냄새의 흔적이 있다. 특히 오늘 같이 날씨가 봄으로 향하는 맑은 날에는 그 냄새가 너무 진해 잠시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다. 정신차리자.

2월 28일 나무 그늘

미세먼지 때문인지 목에 가래가 많이 끼고 감기 기운까지 있다. 올해는 황사가 아니라 먼지와 함께 봄이 오고 있다.

미도리 인터뷰를 분석하다보니 이 공간의 특징 중 하나가 명확히 드러난다. 미도리는 호기심으로 이 공간을 방문하고 여기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발도로프 인형 강좌를 진행한다. 물론 이것은 이 공간이 생활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주민들의 대안 장소를 표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부: 미도리와 이 공간의 접속은 미도리를 중심으로 주민들, 특히 아이가 있는 주부들의 관계를 만들었다. 미도리의 관계 맺기 전략은 발도로프를 매개로 한 끊임 없는 육아에 관한 수다다. 발화라는 미도리의 전략은 자신의 육아에 대한 경험을 얘기하며 육아와 보육 때문에 주변에서 고립되었던 주민들의 관계를 만들고 공감을 이끌어냈다. 발도로프에 접속한 주부들 역시 인형을 만들며 자기들의 고충과 육아의 고민을 얘기하며 서로 위안을 얻고, 고민을 풀어낸다. 즉 서로가 인정을 받고 얻을 수 있는 친밀의 관계를 형성했고, 이 공간을 친밀의 공간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무엇보다 미도리는 육아에 대한 수다의 담론을 이끌며 개별 주부들에게 부담을 주는 육아의 방식이 아닌 관계를 통해 육아를 하는 공동육아의 필요성을 주부들이 공유할 수 있게 했다. 
 친밀의 공론장이 대안적인 담론을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가 자유를 촉발하고 지원할 수 있는 구체적인 타자와의 '관계' - 자기의 아이덴티티를 다른 방식으로 재정의함으로써 지금까지와는 다른 자기이해를 촉발해줄 수 있는 관계’ - 의 창출과 형성을 필요로 한다.육아 때문에 고립되었던 주민들은 미도리와 나무그늘에 접속함으로써 친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고, 공통의 고민(육아)을 공유하고 소통함으로써 육아에 대한 다른 이해방식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이 발도로프 모임에서 형성된 친밀 관계가 이 공간 전체로 퍼지는 것은 아니다. 발도로프 인형 만들기가 수다를 통해 운영되기 때문에 7-8명의 소규모 인원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 공간에서 폐쇄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이 이유는 무엇보다 이 곳이 카페라는 공간적 특성에 기인한다. 기본적으로 카페는 이용하는 사람들 간 영역의 배타성이 강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방해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얘기를 나누는 곳이 카페이기 때문에 여기를 찾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친밀 관계의 형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곳에서 나무그늘을 매개한 동아리 모임, 예를 들면 발도로프, 달고나, 도자기 동아리 등은 각자의 친밀 관계를 형성하고 있지만 이들 간의 관계의 접합 및 이들과 여타 이곳을 이용하는 주민들의 접합은 이뤄지지 않는다.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다양한 방식으로 이 공간을 전유하고 있을 뿐이다(보여줌으로 써 형성될 수 있는 관계의 확장은 좀 더 살펴보고 확인해 봐야 한다).
 따라서 애초에 기대했던 공간의 정치 및 사용자들의 공간 전략들은 살피기에는 무리가 있는 상황이다.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지 이 공간을 소비하기 위해서 오는 손님의 역할에 충실하다. 동아리 모임이라는 목적 의식이 없는 불특정 다수의 주민들이 이곳을 경유하며 관계가 확장되거나 열리는 가능성은 약하다...... 흠....... 근데, 보여지는 것으로써 이 공간의 성격을 인식하는 경우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것이 하나의 큰 변수가 있을 듯 한데... 
 공간을 이용하는 손님의 범주: 동아리, 조합원, 인근 주민 - 각자가 이 공간을 이용하는 패턴과 인식하는 유형의 차이
 공간의 관계망이 형성되고 유지되는 방법: 윤도령, 사무국장, 도다, 성수의 연결망 접속 및 유지 방법
 윤도령의 전략: 인큐베이팅

일단 여기까지... 확실한 것은 주민들의 관계가 확대되는 것은 이 공간에서 주민들끼리 관계맺기보다는 축제 혹은 윤도령이 가진 연결망에 주민들이 접속되어 확장되는 경우.

2월 14일 나무 그늘

열린 마루가 놀이방으로 변화. 이미 아이들이 호기심을 품고 안을 구경하고 있음. 이를 계기로 동네 주부들한테 이 공간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주민들과 관계를 맺을 때 어떤 효과를 내며 이것이 또 나무그늘의 성격에 어떤 의미를 만들어 낼 것인지. 
시끌벅적한 주부들의 수다 공간의 조건을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다. 

오늘의 나는 매우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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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도 있다. 되살림 가게의 공간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시끌벅적하다. 수많은 이야기가 섞여서 피곤한 내 귀에 무수히 꽂힌다. 개중에 몇몇 분들은 이 공간을 계속 찾는 분들이고, 몇몇은 낯설다. 문턱이 없이 누구나 오는 곳이라는 이미지는 확실히 만들어진 것 같기는 한데, 이들을 중심으로 어떤 판을 만드는 것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나의 욕심이 투영돼서기도 하겠지만, 아직 시간이 더 들여야 할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이 곳이 표방하는 생활정치를 어떤 식으로 발견하고 해석을 할까?

2월 12일 나무 그늘

저녁부터 이뤄진 8명의 젊은이들의 얘기가 흥미롭다. 노동에 대한 얘기를 서로 나누며, 현재 자신의 처지를 추상화된 사회 노동에 빗대며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바우만의 책 제목처럼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에 대해서 사뭇 진지하게, 혹은 농담을 섞어가며 유쾌하게 풀어낸다. 뭔가 조직을 꾸리기 위해서, 정확하게 엿들은 바에 따르면 알바 연대와 비슷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 긴 시간 자신의 노동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평가하며 이 가치가 보편적인 사회적 가치에 어긋남을 공유한다. 이들이 모인 공간에서 나무그늘은 일종의 음모(?)를 꾸미는 혹은 혼자서 이해하고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공동의 문제로 대응하려는 저항의 장소로 전유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저녁시간대 카페를 책임지는 매니져가 알바연대의 회원이며, 청년 좌파의 회원(?)이기 때문이며, 이를 통해 이들이 남의 눈치보지 않고 자신의 얘기를 숨김없이 공유할 수 있는 장을 얻는다. 기본소득, 노동당, 통상임금... 카페에서 나오는 음악은 혁명을 외치고... 정치적인 것이 분출하는 래디컬 스페이스

한쪽 구석(되살림 가게) 앉아 계시던 분들(중년의 아줌마 4명)은 케익을 자르며 친구들의 생일을 축하하고, 그 맞은 편은 연인인지 소란스런 분위기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둘만의 대화를 나눈다. 다채롭게 나타나는 공간의 성격은 서로 경합하며 섞이지 않은 채로 각자의 영역을 만든다. 호기심에 곁눈질을 하기도 하지만 이 시선이 영역을 타고 넘지는 않는다. 하긴 여기는 기본적으로 카페니까...

확실히 낮분위기와 밤분위기는 차이가 있다. 무엇이 이 차이를 구조화하고 명확히 하는지, 그게 매니저의 차이인지 아니면 방문하는 사람들의 목적의 차이인지, 아니면 둘다인지, 아니면 시간대에 따라 패턴화된 주민들의 일상적 삶의 반영인지? 결국에 이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관계들의 유형이 서로 어떻게 간섭하고 상호작용하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 주민들은 주로 되살림 가게에 영역을 만들고, 외부에서 접속하는 사람들은 주로 카페에 영역을 만든다. 자~ 이것은 왜? 아니 어떻게?

좋아한다라는... 일기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은 같이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때론 환호하며 열광하고, 때론 절망하고 아파했던
그 수많은 기억들이 함께 포개지며, 단단한 매듭으로 나를 포박지어
다른 데로 향할 수 없게 만드는... 
누군가는 바보처럼 그런 걸 왜 좋아하냐고 타박을 주지만,
그 기억의 매듭들이 아로새겨진 내 몸은 의지와 상관없이
켜켜이 쌓인 기억의 층에 포로가 되어 바보 짓을 한다. 

흐름의 시간성과 쌓임의 공간성이 교차하는 내 삶의 역사는
특정 방향으로 틀지울 수 없지만 기억이 향하는 애정은
삶에 수로를 만들며 기어이 그것이 있는 곳으로 닿게 한다. 

문득 요즘 내 삶이 왜 갈피를 못 잡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다
흐릿해진 기억과 느슨해진 매듭을 발견했다. 
어떤 사건 혹은 계기로 다시 팽팽하게 매듭이 당겨질지 모르지만
한번 풀어진 매듭은 요란한 자국만 남기며 어긋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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