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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서평

 

Benjamin, W. 2005.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발터벤야민의 문예이론』. 반성완 역. 민음사.


도시사회학 석사 김민수


예술이론에 새로이 도입될 개념들은 파시즘의 목적을 위해서는 전혀 사용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가 흔히 사용해온 전통적 개념들과 구분된다. 이들 개념들은 전통적 개념들과는 달리 예술정책에 있어서 혁명적 요구를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W. Benjamin


1. 일반적인 오해


일반적으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의 ‘아우라’ 개념을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벤야민이 ‘아우라’ 개념을 사용하며 예술의 진품성이 사라지는 현상을 개탄했다는 오해다. 그러나 이 책을 천천히 독해해 본 사람은 기술복제로 인한 예술작품의 ‘아우라’의 파괴는 벤야민이 말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기제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술복제로 인한 예술작품의 ‘아우라’의 파괴가 혁명의 기제가 될 수 있는가?


2. 영화가 어떻게 프롤레타리아의 혁명 수단이 될 수 있는가?


 1) 사진과 영화의 성격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을 대표하는 두 가지는 ‘사진’과 ‘영화’다. 이 두 가지는 기존의 예술작품과 질과 양에서 차이가 난다. 우선 두개는 진품과 복제의 경계가 없다. 사진은 인화를 통해서 몇 번이고 동일한 결과물을 생산해낼 수 있다. 영화 역시 필름을 통해서 무한히 같은 결과물을 생산해낸다. 따라서 기술 발전으로 인한 사진과 영화의 발명은 예술작품이 가지고 있던 ‘아우라’를 쉽게 파괴한다.

또한 두 개는 그동안 인간의 시각이 포착해내지 못한 것들을 끄집어낸다. 사진은 기존의 회화에서 관조의 대상으로 바라보던 인물이나 풍경을 분할하고 확대하여 우리가 보지 못한 시야를 확보해준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는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서 다양한 시각으로 인물이나 풍경을 묘사할 수 있으며, 한 순간을 길게 늘리거나, 빠르게 편집할 수 있다. 또한 영화는 시간의 흐름으로 묘사되는 연극의 성격을 넘어선다. 영화의 촬영은 마지막 장면이 맨 처음 촬영될 수 있고, 처음 장면이 중간에 촬영될 수 있다. 영화는 편집을 통해 시간의 연속성을 파괴하고 콜라쥬와 몽타주의 형식으로 조합해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낸다.

따라서 영화를 보는 관객은 카메라의 시선으로 영화를 바라본다. 연극에서처럼 관객이 인물과 무대의 ‘아우라’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건조한 카메라의 시선으로 영화를 본다. 그러므로 영화를 보는 관객은 분석적이고, 비평가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다.1)

무엇보다 영화는 대중의 참여없이 가능하지 않다. 기존의 예술작품이 소수의 계층만 소유하는 것이었다면 영화는 그 수익구조상 많은 수의 대중이 참여가 없으면 유지될 수 없다. 영화는 예술을 대중화시켰으며 이를 통해 대중은 좀 더 폭넓은 세계를 경험함으로써 그들의 의식을 고양시킬 수 있다.


2) 파시즘과 공산주의


이러한 영화의 성격은 대중에게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파시즘이고, 다른 하나는 공산주의다. 영화가 사물의 모습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냄에 따라 파시즘은 그들의 정치를 영화를 통해서 선전한다. 많은 수의 대중이 이 영화를 보면서 혹은 영화를 통해서 전쟁을 미화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대중은 자연스레 파시즘의 논리에 동화된다. 그러나 파시즘은 자본주의 소유관계는 건들지 않고 자본주의 모순을 영화를 통해서 대중이 지각하지 못 하게 한다. 오히려 대중이 전쟁에 참여하게 만들고, 대중이 제국주의를 옹호하게 만든다. 즉, 벤야민의 표현에 따르면 파시즘은 정치를 예술화시켰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예술을 정치화시키며 파시즘에 맞서고 있다. 벤야민이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예술의 정치화는 리얼리즘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대중이 직접 영화에 참여하고, 자본주의 모순을 영화를 통해서 인식시키는 것을 예술의 정치화라 말한 것이라 생각한다.

정리를 하면 기술의 발달로 자본주의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을 겪을 수밖에 없는데, 이 기술의 발달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 따라서 영화는 단순히 ‘아우라’를 파괴하는 기술조건이 아니라 이 기술력을 이용하는 정치․권력 간의 각축의 요소가 된다. 그러므로 벤야민에게 기술복제는 단순히 진품성의 ‘아우라’를 파괴하는 것도 아니고, 영화를 통해서 인류의 발전이 이루어지는 기계적인 기술적 요소도 아니다. ‘아우라’를 파괴하는 조건을 살핌으로써 이것이 어떻게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을 고양시킬 수 있는 가능성과 이를 이용하는 정치적 관계를 살피는 게 내가 생각하는 이 글의 요지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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