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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계급 재생산 서평

폴 윌리스. 2004. 『학교와 계급 재생산』. 김찬호․김영훈 역. 이매진.

김민수 
 

1. 반(反)학교 문화

 폴 윌리스는 노동자 계급의 자녀들이 어떻게 노동자 계급으로 재생산되는지를 연구하기 위하여 해머타운(노동자 계급이 대부분의 인구를 구성하는 마을)의 한 학교에서 ‘싸나이’(학교에 저항하는 문제아)들의 반(反)학교문화를 그들과 그룹토론을 통해서 분석해나간다. ‘싸나이’들의 반(反)학교 문화는 대체로 선생님한테 ‘개기기’, ‘거짓말하기’, ‘까불기’, ‘익살떨기’ 등으로 나타나고 이것들은 ‘싸나이’ 집단에서, 즉 학교 내 친목단체인 비공식집단을 통해서 유지되고 확대되고 창조된다. 폴 윌리스는 ‘싸나이’들과 집단 토론과 개별토론 그리고 참여관찰을 통해서 이들의 반(反)학교 문화가 이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이들이 노동자 계급으로 재생산되는데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를 분석한다. 분석의 주요한 개념으로 폴 윌리스는 ‘간파’와 ‘제약’을 제시한다.


2. 간파

 간파란 한 문화적 형태 안에 있으면서 그 구성원들이 처한 삶의 조건과 전체 사회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꿰뚫어보려는 충동을 가리킨다(p254). 폴 윌리스에 따르면 ‘싸나이’들은 그들의 비공식적인 반(反)학교 문화를 통해서 그들의 삶의 조건을 간파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싸나이’들은 거칠고 은유적이고 새로운 언어와 말투, 그리고 특이한 복장을 개발해낸다. 왜냐하면 그들의 비공식적 집단에 의해서 유지되는 반(反)학교 문화를 통해서 형성되는 간파의 소재들을 담기에는 공식적이고 관례적인 언어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지배체제 속에서 만들어진 말들이 그 체제로 편입되지 않은 것들을 표현해낼 수 없다. 그러므로 학교체제에 대한 저항의 일부분은 정신생활의 표현이라 여겨진 말에 대한 거부이다. 따라서 이러한 창조적 통찰들이 표출되는 방식은 부르주아의 지배적인 의미화 양식 - 언어 - 에 대해 드러내는 일종의 대립이라고 볼 수 있다.

 간파는 ‘싸나이’들의 비공식 집단(즉, ‘싸나이’들의 또래 집단)에서 창조적으로 만들어지고 재생산된다. 폴 윌리스는 간파의 토대로 작용하는 가장 작으면서 뚜렷이 구별되는 단위를 비공식 집단이라고 말을 한다. 왜냐하면 개인 이상의 집단의 힘에서 이러한 간파가 생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헤머타운 ‘싸나이’들의 비공식 집단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간파를 폴 윌리스는 교육과 자격에 대한 간파, 노동력은 특수한 상품이라는 것에 대한 간파, 일반화된 추상 노동에 대한 간파로 설명한다. 교육과 자격에 대한 간파에서는 교수법이나 자격이 부르주아 사회의 복종과 순종에 대한 대가라는 것을 ‘싸나이’들이 반(反)학교 문화를 통해서 간파를 한다. 따라서 ‘싸나이’들의 반(反)학교 문화는 노동자 자녀들이 앞으로 선택할 수 있는 일이 매우 한정되어 있음을 노동자 계급의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별반 차이가 없음을 간파하게 된다. 또한 노동력을 통해서만 이윤이 창출된다는 것을 ‘싸나이’들은 간파를 하고 후에 직업에서 그들의 노동력을 상사의 눈치를 보면 적절히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요령(?)을 터득하게 된다. 그리고 노동의 조건과 환경이 기계화, 분업화되면서 점점 탈숙련화 비숙련화되는 상황에서 노동이라는 것의 특수성은 사라지고 점점 일반화된 추상 노동의 성격을 갖는 것에 대해서 ‘싸나이’들은 간파를 한다. ‘싸나이’들이 자기들이 종사하는 일의 특정 형태에 무관심한 것, 어떤 종류의 ‘바른 태도’를 그들이 취하는지와 상관없이 일은 본질적으로 무의미하다는 전제, 자기들이 직면하는 모든 일이 유사하다는 일반적인 관념, 이 모든 것은 계급 구성원으로써의 실제 조건에 대한 문화적인 간파의 형태이다(p294). 

 그러나 ‘싸나이’들이 반(反)학교문화를 통해서 자본주의 하에서 자신들의 삶의 조건과 노동의 무의미성, 학교 교수법과 자격증의 허구, 노동력의 특수한 조건을 파악한다고는 하지만 이것이 곧 이들의 조건과 노동자 계급의 종속을 지양하기 위한 계급의식, 즉 대자적 의식으로 발전되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간파가 더욱 확대되어 어떤 집합 의식으로 발전을 가로 막는 제약이라는 요소가 반(反)학교 문화에 침투해서 서로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제약

 제약이란 간파의 충분한 발전과 표출을 혼란시키고 방해하는 이런저런 장애요소와 이데올로기적 영향을 가리킨다. 폴 윌리스는 간파를 가로막고 방해하는 요소인 제약을 크게 분리와 이데올로기로 나눈다. 분리에는 각각 육체정신노동의 분리, 남녀의 분리, 인종차별의 분리로 다시 분화되며 이데올로기는 확정과 교란, 내부의 매개자로 구분된다.


 1) 분리

 ‘싸나이’들은 반(反)학교 문화를 겪으며 육체노동은 남성적인 것으로 정신노동은 여성적인 것으로 의미를 부여한다. 반(反)학교 문화에서 자신들의 개기는 것과 까불기 그리고 거친 반항은 자연스럽게 남성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되고 ‘범생이’들의 순응적이고 복종적인 태도는 여성적인 것으로 여기게 된다. 따라서 ‘싸나이’들이 학교를 졸업한 얻게 되는 육체노동은 ‘싸나이’들에게 남성성의 의미로써 건강하고 역동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고 ‘범생이’들이 얻게 되는 정신노동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여성성의 의미로 ‘싸나이’들에게 폄하되어 인식된다. 이렇게 남성성과 육체노동의 연관은 노동력에 관련된 문화적 간파와 현대적 노동의 본질이 지니고 있는 일반화된 추상적 노동이라는 간파를 역설적이게 육체노동의 긍정으로 옮겨놓는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추상화된 일반노동의 원리가 노동의 의미를 그 내부로부터 소진시켜버린 데 반하여, 변형된 가부장제가 노동의 바깥으로부터 의미를 채워주는 현상이다(p307). 이러한 상황에서 힘들고 열악한 육체노동의 노동 조건은 힘든 과업을 사내답게 대처하는 영웅적인 실천으로 재해석된다(p308). 그리고 이러한 힘든 조건에서 벌어온 봉급은 여타 부인인 여성과 자식들이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보상으로써 물신화․상징화되고 이것은 가정의 문화와 경제를 지배하고 남녀 모두의 위에 군림하는 가정 내에 가부장의 논리를 재생산하고 확대하는 작용으로 기능한다.

 노동 및 성별분리와 함께 인종적 분리는 제약을 공고히 하는 요소이다. 인종적 분리는 육체노동의 범주를 설정함으로써 백인들의 육체노동 즉, ‘싸나이’들의 육체노동이 모든 천한 노동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천명하게 한다. 이민 온 사람들이 더 힘들고 육체적인 노동을 하기가 쉬운데 이들에게 남성성의 외피를 씌우는 것은 백인 ‘싸나이’들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그들이 떠맡은 일들은 다시 분류되어 남성다움의 문화적 기준에서 벗어나 ‘더럽고’, ‘난잡하고’, ‘비사회적인’ 범주로 전락해버린다(p315). 따라서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순전히 불가피한 종족적 적대감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체제 하에서 노동력에 대한 복합적인 사회적 규정에 관련해서 이해해야 한다. 이로써 간파를 통해서 어설프게 인식되고 있던 노동의 형태와 노동의 가치들은 인종의 분리에 의해서 또다시 희미해지고 왜곡되어진다.


 2) 이데올로기

 반(反)학교 문화 내 분리라는 요소가 있어서 이 문화가 체제 저항으로 나가지 못하고 체제에 순기능으로 작용하지만 간파가 확실히 교란되고 흐릿해지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의 작용이 필요하다. ‘싸나이’들이 학교에서 벌어지는 취업이라는 이데올로기와 공식적인 이데올로기를 뒤집고 전복을 하지만 그래도 위에서 만들어지는 이데올로기는 그들의 반(反)학교 문화에 침투해 그들의 간파를 흐릿하게 채색하고 교란시킨다. 윌리스는 이것을 ‘확정’과 ‘교란’ 그리고 ‘내부의 매개자’로 설명을 한다. 확정은 ‘싸나이’문화의 여러 측면과 해결들 중 현 사회적 노동 조직과 그들의 이익과 생산의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것들을 장려하는 것이고 교란은  체제에 대한 어느 정도의 비판적 간파를 담고 있는 것들을 교란시킨다. 예를 들면 취업에 관한 다큐멘터리나 영화의 관람에서 전혀 남성중심적인 장면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직업들이 - 겉으로는 남여평등처럼 보이는 장면에서 - 멋지고 웅장하게 편집되어 나타날 때 ‘싸나이’들은 이 장면에서 남성성의 우월감과 매력을 발견하고 곧 그들은 육체노동에 대한 긍정성을 발견한다. 이데올로기는 이런 식으로 불확실한 어떤 것에 자연스러운 것으로 확정하게 한다. 즉, 이러한 취업 교육과 매체를 통해서 ‘싸나이’들은 성차별을 자연스런 것으로 남성의 육체노동의 우위성을 자연스런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교란의 예는 학교의 취업 교육에서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것에서 나타난다. 좋은데 취직을 하기 위해서는 친구들을 다 잊어야하고, 궁핍과 고통스런 삶은 사회 체계의 문제이기보다는 자연스런 문제, 개인의 무능에서 오는 문제라는 관념이 취업교육에서 강조된다. 이러한 교란은 직장 내에서 불평등, 그리고 부정의와 모순을 매일매일 감지할지라도 어떤 공통된 원인에서 일어난 요소라기보다는 원인의 방향이 없는 자연적인 사회체계의 모습이라고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 하나의 저항양식으로 나타나는 ‘싸나이’들의 반(反)학교 문화의 비공식성의 본질은 그것이 스스로를 이 사회의 규칙에 대한 예외로 유보하는데 있다. 이러한 유보는 함께 이 사회의 규칙을 타도할 수 있는 다른 반(反)학교 문화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고 인지의 map을 형성한 그 문화에 대한 통찰의 부재로 인해서 이데올로기는 너무나 쉽게 ‘싸나이’에게 침투된다. 이데올로기는 문화의 약점을 보완해주는 내부의 매개자가 된다.


4. 문화

 이러한 제약을 통해서 반(反)학교 문화의 간파는 흩어지고 흐려진다. 제약들은 오히려 반(反)학교 문화를 체제 순응적인 문화화하는데 기여를 하게 된다. 윌리스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노동자 계급 아이들의 노동자 계급으로 재생산은 단순히 경제적 처지에 따른 아니면 교육의 불평등에 따른 문화적 박탈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 계급의 재생산은 반(反)학교문화라는 역동적인 활동과 기존 체제를 거부하는 활동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윌리스에게 문화는 체제를 유지하고 보존하는 기능주의적 관점의 문화의 개념도 아니고 토대의 반영의 불과한 매우 기계적인 마르크스주의의 문화의 개념도 아니다. 문화는 삶의 양식이며, 스타일이고 개인 그리고 집단의 정체성과 인식의 map을 형성시켜주는 것이다. 반(反)학교 문화가 체제에 반(反)하는 ‘싸나이’들의 말투, 행위, 스타일 그리고 인식의 map을 형성시켜주었던 것처럼 문화는 체제 내 흡수되는 종속적인 것이 아니라 체제 내에서 자율성을 유지하고 그리고 구조와 개인을 매개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개인들과 집단들의 삶의 태도, 습관 등을 재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문화는 사회 연구의 그리고 사회 변혁의 중심적 소재가 된다. 윌리스가 노동자 계급 아이들의 반(反)학교 문화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문화를 분석함으로써 어떻게 계급이 재생산되는지를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덧글

  • 제절초 2007/08/09 13:39 # 답글

    오오 교육사회학이군요. 요즘 학교에서 특강을 듣고 있어서인지 교육사회 관련 내용을 보니까 너무 반갑습니다.(웃음) 한국에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있지는 않은가 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하네요 'ㅂ'
  • 아웃사이더 2007/08/09 13:43 # 답글

    윌리스의 논의를 가지고 논문을 쓴 것이 있습니다. 동국대 사회학과 석사 논문 중에 찾아보시면.. 도움을 얻을 거라 생각합니다.
  • Roy 2014/02/12 17:45 # 삭제 답글

    혹시 시립대 박사과정 김민수 선생님세요?
  • 아웃사이더 2014/02/12 20:36 # 답글

    네, 맞는데요;; 저를 아는 분은 실례지만 누구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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